우리나라 의학교육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많은 기구가 있었고 그 기능을 강화하고 역할을 분담하기 위한 발전적 변천과정을 통하여 현재에는 한국의학교육협의회, 한국의학교육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그리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네 기구는 그 탄생에서부터 변천과정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수하게 의료의 미래와 특히 의학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의료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열정적인 기여에 의해 오늘까지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의료의 3대 요소는 교육∙연구∙진료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중 유독 교육만큼은 많은 의학자들이나 의료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로 많은 교수들은 자신이 맡은 강의에 충실하기도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의료계 선각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점점 더 그 내용을 강화해 왔으며,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의학교육협의회는 1998년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이듬해 신설의과대학 10개에 대한 자문평가를 시작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의 의과대학평가의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2003년에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을 탄생시킴으로써 본격적인 의과대학 인증평가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출범 당시 상정된 기능으로는 그 이전 한국의학교육협의회의 인정평가위원회가 담당하던 의과대학의 인증평가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물론 주된 사업이었으나, 그 이외에도 명목상으로는 졸업 후 교육을 포함한 의사의 평생 교육 전반에 대한 평가를 총괄하는 기구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의평원은 설립 직후부터 보건복지부 허가에 의한 재단법인으로서 이사진에 우리나라 의료의 중요한 기관들의 대표 및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 및 공익대표들이 참여하는 매우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고 있음으로 해서 그 미래는 더욱 더 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평원은 그간 국내 의과대학에 대한 정규 인정평가사업을 실시하여 오는 등 많은 일을 해오던 중 교육부로부터 의과대학 평가인증을 위한 공식 인정기관으로 선정되고, 사업은 고등교육법에 의해 의무화되었으며, 지난 2019년 5월 교육부로부터 5년간 재지정을 받음으로써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과대학 인증평가 사업의 국제화에도 심혈을 기울여 2016년에는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로부터도 평가인증기관으로 인정을 받게 됨으로써 명실공히 권위 있는 국제적 인증평가 기관으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외적인 화려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의평원은 아픈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설립 초기에 맞닥뜨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과 정착 과정에서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과 부적합성을 예견하고 교육계 및 국민들과 함께 충분한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경종을 울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기관의 법적 지위나 제도상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하더라도, 매우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부실 의대로 최종적으로 폐교하게 되는 서남의대에 대한 의평원의 2013년과 2016년의 두 번에 걸친 불인증 처리는 결국 동 대학을 2018년 최종적으로 폐교하게 함으로써 많은 국가적 손실과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으나 의과대학교육에 있어서는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건전한 시스템과 인력, 시설 수준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작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과대학, 특히 공공의대의 신설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으며, 유사한 관점에서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었던 박인숙 교수는 2019년 의원 시절 소위 “서남의대 방지법”이라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무릇 한 나라의 훌륭한 직역, 특히 의료라고 하는 특수한 직역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들의 자부심과 사명감에서 우러나는 품질 유지를 위한 노력이 절대적일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우수한 의료를 만들고자 하는 동기가 근거에 입각하지 않은 의사 수의 증원이나 정치적 목적에서 유인되는 의과대학 신설 등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됨으로써 전반적으로 수준 낮은 의료가 이 사회에 서서히 자리 잡아 가게 되는 경우 그 피해는 우리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대로 국가적 피해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의료인들의 성취동기가 매우 저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들, 특히 북한이나 중국, 심지어는 러시아 등의 의료 수준이 매우 낙후되어 있으나, 그 국민들은 그러한 수준의 의료 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수준 낮은 의료를 제공받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뜻에서 의평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향후 부단하고 깨어 있는 노력이 더욱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끝으로 의평원의 밝은 미래에 대해 의학교육 전문가가 아닌 제가 한 가지 말씀을 더 해드리자면, 의평원은 현재의 입장에서 사업의 외연을 더 넓히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의평원의 본 사업에 대한 전 의료계, 특히 의학교육계의 공감과 동참을 끌어내는 것이 매우 절실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한 나라의 의학 수준은 소위 우수 대학과 여타 대학 간의 교육 수준 격차가 좁혀지는 가운데 동반 성장해야만 나라 전체의 의학과 의료의 발전을 고르게 견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평가 지표를 꾸준히 개발하고, 보급하고, 교육함으로써 의료계 전체가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내에 있는 모든 의과대학이 공유할 수 있는 교육 목표나 교육 방법, 평가 방법 등의 개발에 의평원의 모든 역량을 쏟아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평원에는 국내 의료계를 대표하는 대부분 기관의 책임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꼭 해결해야만 할 당면 과제라고 믿고 있기에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이제까지 60여년을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애쓰신 수많은 선배, 동료, 후배 의료인과 교수님들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리고자 하며, 미래에 펼쳐질 의평원의 무궁한 발전이 우리나라 의학과 의료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